본문 바로가기
읽고 주절 한스푼 - 책/과학

자아는 환상일까?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크리스 나이바우어 리뷰

by joojul1spoon 2026. 3. 11.

출처 : 밀리의 서재

 

 

내가 책을 읽는 궁극적인 이유는 ‘더 나은 삶’을 위해서다.

소설은 허구의 세계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주고, 자기 계발서는 ‘더 괜찮은 사람’이 될 동기를 만들어 준다. 그리고 과학 서적은 ‘나’라는 존재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질 볼트 테일러의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를 읽고 난 뒤 한동안 전뇌적 삶에 대한 갈망이 생겼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 열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옅어졌다.

우울증을 겪던 시기에는 특히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의지대로 되지 않을 때, 내 뇌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을까?

뇌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다면, 우울이 다시 찾아오더라도 과거처럼 끝없는 자책에 빠져 최악의 선택을 하는 상황만큼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그런 마음으로 크리스 나이바우어의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를 읽게 됐다.


책 정보

제목 :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지은이 : 크리스 나이바우어

장르 : 과학

출판사 : 클랩북스

총 페이지 : 272페이지


“내가 없으면 문제도 없다”

“내가 없으면 문제도 없다.(No self, no problem.)”

선불교의 한 경구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다.

저자는 ‘나’라는 존재 자체가 실재가 아닌 하나의 구성물이라고 설명한다.

즉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자아는 사실 만들어진 이야기와 비슷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 생각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
‘자아’란 실재하는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소설 속 등장인물에 더 가깝다는 사실 (P.28)

좌뇌 : ‘해석’의 끝판왕

좌뇌는 정보를 분류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문제는 이 해석 능력이 때때로 실재하지 않는 것까지 사실처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해 보자. 실제로 물리적인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분명 ‘아프다’고 느낀다.

무형의 언어가 어떻게 물리적인 고통처럼 느껴질 수 있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좌뇌의 해석 능력에서 찾는다. 좌뇌는 언어를 고통의 원인으로 해석하고, 그 결과 우리는 실제 통증과 비슷한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해석 장치가 판단을 이용해 끝없이 범주를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순히 마음에 담고만 있어도 판단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P.83)

 

저자는 이런 현상을 플립북(flip book)에 비유한다.

불편한 감각이나 감정 역시 수많은 페이지 중 한 장에 불과하다. 고통도 결국은 지나가는 한 장면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면 마음이 훨씬 가벼워질 수 있다.


우뇌 : 무의식이라 불리는 직감

책의 순서대로 읽다 보면 좌뇌 중심의 삶이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가 강조하는 핵심은 균형, 즉 ‘중도’다.

질 볼트 테일러가 말했던 전뇌적 삶 역시 좌뇌와 우뇌의 균형을 의미한다.

우뇌는 흔히 직감이나 무의식과 연결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다음과 같은 경험도 우뇌가 활성화될 때 나타난다.

  • 무아지경(in the zone)
  • 몰입(flow)
  • 마음챙김(mindfulness)

이 순간에는 과도한 해석 대신 지금 이 순간의 경험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하루에 딱 한 번씩, 아무 이유 없이 뭔가를 해 보자. 좌뇌가 당신에게 뭐라 말하든 상관없다. 자연스럽고 즉흥적인 일에 계획을 세운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여유를 갖고 그 순간들을 맞이하라. 갑자기 일어나서 산책하고 싶다면 나가서 걸어라.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서도, 하던 일이 따분해서도 아닌, 그냥 그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면 한다. 그게 바로 ‘그냥’ 하는 것이다. (P.150)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삶’

좌뇌와 우뇌 중 어느 쪽이 더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저자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로 ‘중도’를 강조한다.

어떤 순간에는 좌뇌가 더 강하게 작동하고, 어떤 순간에는 우뇌의 직감이 앞설 수 있다. 우리는 감정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지만, 그 감정에 깊이 빠지지 않는 상태는 유지할 수 있다.

그 상태가 바로 중도다.

저자의 말처럼, 그런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면 삶이라는 게임을 조금 더 가볍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이 제 역할을 다했다면, 지금 이 순간 도달해야 할 곳도 없고 해야 할 것도 없다는 사실을 당신에게 안내했으리라.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그곳에 있고 이미 그것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진짜 당신’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 무엇도 한 적이 없다. 혹은 모든 곳에 존재하며 모든 것을 한다. (P.242)

마무리 : 양자역학을 떠올리게 하는 결론

책의 서문에는 ‘양자역학’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다. 뇌과학 책에서 왜 양자역학이 등장할까?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아가 실재하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면, 그것은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을 수 있으며 어쩌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만들어낸 고통 역시 어딘가에 고정된 실체가 아닐 수도 있다.

뇌과학 책을 읽었지만, 묘하게 마음챙김 수업을 들은 듯한 느낌이 남았다. 모든 것은 흘러간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줄거리와 리뷰 – 질 볼트 테일러 뇌졸중 회복기

최근에 읽었던 질 볼트 테일러의 『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가 인상 깊어 이번에는 그녀의 전작인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를 찾아 읽었다. 뇌를 연구하는 저자가

njoberkim.tistory.com

 

 

질 볼트 테일러 『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 리뷰 ― 전뇌적 삶으로 가는 길

들어가며TED 강연을 보다가 우연히 접한 질 볼트 테일러(Jill Bolte Taylor) 박사의 이야기는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뇌졸중으로 좌뇌가 손상된 후, 뇌세포 회복 과정을 통해 삶의 본질을 새롭게 바라

njoberkim.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