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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주절 한스푼 - 책/소설

녹즙 배달원 강정민 독서 후기|알코올의존증 자전소설 리뷰

by joojul1spoon 2026. 5. 12.

출처 : 밀리의 서재

 

『녹즙 배달원 강정민 - 김현진』 독서 후기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어김없이 밀리의 서재 랭킹을 뒤적거리던 어느 날이었다. 웹툰이라고 여겨질 만한 겉표지가 눈에 띄는 책이 상위에 랭크된 것을 발견했다. 『코스모스』 같은 벽돌책은 곧잘 읽으면서 만화는 유독 집중을 못 하는 편이라 어릴 때부터 읽지 않았다. 그런데 어라? 웹툰 같은 표지에 장편소설이란다. 심지어 제목도 특이하다. 『녹즙 배달원 강정민』. 상큼 발랄하고 톡톡 튀는 문체일 거란 기대감이 생겨 읽어보기로 했다.


📚 책 정보

  • 제목 : 녹즙 배달원 강정민
  • 지은이 : 김현진
  • 장르 : 소설
  • 출판사 : 한겨레출판
  • 총 페이지 수 : 420페이지

주인공 강정민의 애인 ‘술’

『녹즙 배달원 강정민』은 알코올의존증을 겪었던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래서 주인공 강정민은 알코올의존증을 극복하기 위해 병원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며 중독 치료 프로그램을 받는다. 병원에서 새로 만난 담당 의사의 질문에 답하며 술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어쩌다 술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는지, 경험에서 우러나온 표현들이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문장들이 많았다. 이유가 뭐라고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가끔 가슴이 따끔따끔하게 아파 올 때 그걸 아주 효율적으로 진정시켜 주는 것은 사람보다 술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P.29)

 

의사는 나를 파악하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나 자신을 파악하고 싶지 않다. 나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아봤자 좋은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의사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 내가 의학용어로 말하자면 ‘양가감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술을 끊고 싶다. 그렇지만 두렵다. 술을 끊으면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산단 말인가. 끊고 싶으면서도 끊고 싶지 않다. 끊고 싶다. 그렇지만 끊고 싶지 않다. (P.42)

 

‘중독’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둠과 무게를 솔직하지만 가벼운 문체로 풀어낸 작가의 필력에 놀랐다. 웹툰 작가의 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표현력이 좋다. 『녹즙 배달원 강정민』은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이다.


닮고 싶은 ‘닥돌’ 자세

강정민이 녹즙 배달을 담당하는 K빌딩 경비팀장은 정민의 지사장이 ‘인사’를 하러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민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그래서 지사장은 녹즙 몇 박스로 ‘인사’를 하라고 정민에게 말하지만, 정민이 생각하는 ‘인사’는 90도로 허리를 꾸벅 숙이는 것이라며 본인 방식대로 경비팀장과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인다.

 

쉽게 사는 게 취향이 아니라서요. 누가 이기나 보자고. (P.235)

 

샘플 녹즙 하나 손해 보지 않고 이를 악물고 버텨 원하는 결과를 얻는 정민의 모습에서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 통념이라며, 원래 다 그런 거라며 이해되지 않는 일들을 참고 견뎠던 순간들이 머릿속에 스쳤다. 어차피 내 인생인데 그냥 내 방식대로 풀어볼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과거는 과거일 뿐. 앞으로 인생을 대하는 자세에 ‘닥돌’을 조금 묻혀봐야겠다.


강정민에게 최준희는 누구였을까?

정민의 위기의 순간마다 슈퍼맨처럼 나타나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최준희라는 인물의 정체는 드라마 열린 결말처럼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최준희는 등장인물의 99%가 현실적인 이 이야기 속에서 유일하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인물이다. 그래서 오히려 미지의 인물로 남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민이 술에서 벗어나 진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뼈 때리는 말만 골라하는 최준희. 인생에 이런 친구 하나 있으면 정말 든든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인생을 진짜로 시작한 게 아니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잘할 수 있어. 잘 살 수 있어. 아직 마음을 먹지 않을 것뿐이야. (P.370)

 

결말까지 모두 읽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준희는 어쩌면… 정민의 ‘술’이었을까?


 

마무리 - 삶에 유예기간은 없다

문체가 가볍고 묘사가 워낙 사실적이라 몰입도가 높고 술술 읽히는 매력적인 책이다. 그렇다고 내용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작가의 경험이 담겨 있어서 그런지, 읽을 때는 분명 유쾌했지만 완독 후에는 어딘지 모르게 ‘성장’한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고 한다. 괜한 걱정부터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살자. 이야기 속 준희의 말처럼 삶은 냉정해서 유예기간을 주지 않는다.

 

지금 바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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