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타지나 SF소설은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장르였다.
하지만 문목하 작가의 『돌이킬 수 있는』을 읽고 나의 편견은 완전히 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SF 작품을 고르는 일은 여전히 망설여졌다.
읽다가 중도 포기할 가능성이 있는 책에 시간을 쓰기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인에겐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작품이 바로 문목하 작가의 『유령해마』.
이미 나에겐 한 번 검증된 작가라는 점에서 비교적 안심하고 시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SF어워드 수상작이라는 점도 선택에 확신을 더해줬다.
개인적인 독서 경험상, 수상작은 최소 ‘중박 이상’은 한다.

📚 책 정보
- 제목 : 유령해마
- 지은이 : 문목하
- 장르 : SF 소설
- 출판사 : 아작
- 페이지 : 352쪽
이미정과 해마 ‘비파’ – 독특한 서사 구조
이 소설의 중심에는 ‘이미정’이라는 인물이 있다.
무너진 잔해 속에서 구조된 아이는 이름조차 없었고, 경찰이 입력한 ‘미정(未定)’이라는 이름 그대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존재, 인공지능 해마 ‘비파’.
비파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미정의 삶 전체를 기억하고 관찰하는 존재다.
고아원 시절부터 대학 입학, 그리고 기자로 살아가는 성인기의 모습까지—
미정의 인생 전부를 지켜본다.
이 소설은 비파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진행된다.
덕분에 독자는 마치 미정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감정이 없는 기계의 담담한 서술이 오히려 더 큰 위로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네가 삶의 크고 작은 굴곡마다 그럭저럭 적응해 버텨왔던 것처럼 너는 여기에마저 적응을 했다. (P.63)
나는 4천만 시민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고 너를 특별하게 여겼던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도 오로지 너에게만 유별했다. 너 외의 인간이 내 손이 닿지 않는 구역에서 어떤 위험에 처하든 내 알 바 아니었다. 그런 걱정은 내 업무가 아니었으니. (P.311)
비파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존재는 단순한 기계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수호자일까.
외롭지만 묵묵히 살아가는 미정을 지켜보는 비파의 모습은
어쩌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처럼 느껴진다.
감상 – 기계에게서 느끼는 가장 인간다움
“보이는 것들을 보지. 볼 수 있으니까 보고.” (P.143)
『유령해마』는 SF소설이지만,
결국 이야기의 중심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에 있다.
만약 인공지능이 자의식에 가까운 단계까지 발전한다면,
비파와 같은 존재가 현실에도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바람도 생긴다.
누군가의 삶을 묵묵히 지켜봐 주는 존재가,
꼭 인간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어쩌면
외로운 순간을 견디게 해주는 존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가장 조용히 곁에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비파의 데이터가 모두 사라진다고 해도
서로를 ‘멍텅구리’라고 부르던 그 기억만큼은
어딘가에 남아 있기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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