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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주절 한스푼 - 책/소설

2025 노벨문학상 수상작 『사탄탱고』 리뷰 – 크로스너호르커이 라슬로, 회색빛 희망의 종소리

by joojul1spoon 2025. 10. 17.

출처 : 경기도사이버도서관

 

믿고 보는 노벨문학상 수상작

리틀 라이프도 그랬지만, 세계적인 문학상 수상작 중에 마음 편히 읽히는 책은 드물다. 『사탄탱고』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읽는 내내 마음이 피로하고, 세계가 잿빛으로 변해가는 듯한 감정이 몰려온다.

그럼에도 이 책은 왜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되었는지 스스로 증명하는 작품이다.


책 정보

  • 제목: 사탄탱고 (Sátántangó)
  • 지은이: 크로스너호르커이 라슬로 (Krasznahorkai László)
  • 출판사: 알마출판사
  • 장르: 외국소설 / 헝가리 문학
  • 페이지수: 412쪽

줄거리 요약 – 절망 속에서 춤추는 사람들

빈곤한 헝가리 농장 마을.

1년 반 전에 죽은 줄 알았던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가 다시 돌아온다.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던 마을 사람들은 두 사람의 등장을 희망의 신호처럼 받아들인다.

그들은 술집에 모여 술을 마시고, 탱고를 추며 두 사람을 맞이한다.

하지만 돌아온 이리미아시는 계몽적인 연설을 늘어놓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믿으며 자신들의 돈을 내어놓는다.

결국 이리미아시는 그들을 트럭에 태워 일자리가 있다는 지역으로 흩어지게 만든다.

남겨진 것은 텅 빈 마을과 혼자 남은 의사.

그리고 그가 마지막에 알게 되는 충격적인 진실 — 소설 첫 장에 등장했던 ‘희망의 종소리’는 사실 미치광이 노인이 텅 빈 성당에서 울리던 소리였다는 것.


이리미아시, 구원자인가 파괴자인가

이리미아시는 작품의 중심인물이다.

그의 등장은 해체되던 마을에 다시금 희망의 색을 덧입히지만, 그 희망은 환상에 불과하다.

그의 계획은 ‘재건’이 아니라 해체였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흩어버리고,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인물들(후터키, 술집 주인)을 통해 작가는 이리미아시의 진짜 정체 — 공산당 정보원임을 암시한다.

그는 구원자가 아니라 체제의 하수인이다.

“주인 잃은 노예들인 주제에 명예와 자부심과 용기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고들 하지. 그 믿음으로 저자들은 살아가는 거야. 둔한 마음 깊은 곳에선 저런 덕목들이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는 걸 감지하고 있겠지만 말이야. 왜냐하면 그들은 그저 저 말들의 그늘 속에서 살고 싶은 것뿐이니까.” - 농장 사람들에 대한 이리미아시의 의견 p.66

 

소설의 배경이 1980년대, 공산주의 붕괴 직전의 헝가리라는 점에서

이리미아시는 혼란스러운 시대의 상징이자, 이상과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는 인물로 읽힌다.


보이지 않는 힘 ‘종소리’와 ‘거미줄’

이 작품의 인상적인 상징은 두 가지다 — ‘종소리’와 ‘거미줄’.

소설은 후터키가 종소리를 듣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디에서도 종이 없는데 들려오는 그 소리는, 희망의 환상처럼 마을 사람들을 이끈다.

그러나 결말에서 드러나는 진실은 잔혹하다.

그 소리는 단지 미치광이 노인이 부서진 종탑에서 내던진 허공의 메아리였다.

또한 술집 주인은 한 번도 거미를 본 적이 없지만,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어딘가에서 생겨난 거미줄에 시달린다.

이는 아마도 보이지 않는 감시의 그물 — 공산주의 정부의 권력을 상징하는 장치로 읽힌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힘,

‘종소리’와 ‘거미줄’은 체제 속 인간의 무력함을 은유한다.


총평 – 마음을 회색빛으로 물들이는 소설

『사탄탱고』는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는다.

단락이 거의 나뉘지 않고, 문장이 길게 이어지지만 이상하게도 몰입도가 높다.

헝가리 문학 특유의 냉소와 철학적 깊이를 품은 이 작품은

읽는 이를 차분히 사유의 세계로 이끌며, 노벨문학상 수상작의 무게를 실감하게 한다.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기보다는 서늘해지지만, 그래서 더욱 오래 남는다.

“문학이란 인간의 회색빛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예술”임을 증명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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