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려한 전작들의 매력에 이끌려 최근에 읽은 <가공범>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과거 작품 중 밀리의 서재 평점 4점 이상을 받은 책을 골라보기로 했다. 이미 이름이 알려진 작품들은 대부분 읽었거나 줄거리를 알고 있었는데, 그중 <용의자 X의 헌신>이 눈에 띄었다. 일본에서 영화화까지 된 화제작이라 기대감을 갖고 읽기 시작했다.
책 정보
- 제목 : 용의자X의 헌신
- 지은이 : 히가시노 게이고
- 장르 : 미스터리 소설
- 펴낸 곳 : 도서출판 재인
- 전체 페이지수 : 447쪽
천재들의 수싸움, 숨 막히는 전개
이 소설은 이야기 초반에 벌어진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범인과 사건의 경위가 이미 드러난 상태인데도, 400쪽이 넘는 분량을 불과 3일 만에 읽게 만든 것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집필력 덕분이다.
사건의 핵심에는 이시가미, 그를 의심하는 형사 구사나기, 그리고 제3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통찰하는 물리학자 유가와가 있다. 이 세 사람의 두뇌 싸움은 마치 고수들의 카드놀이를 지켜보는 듯 긴장감이 넘쳤다. 각자가 가진 패를 알면서도 가장 유리한 순간에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 치밀하게 계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선입견에서 비롯된 맹점을 찌른다”라는 결말의 표현은 감탄을 자아냈다.
“그것은 완벽하다고 믿었던 수식이 예기치 못한 미지수에 의해 서서히 흐트러져 갈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P.236)
순수한 사랑일까, 집착일까
이시가미가 야스코를 향해 보여주는 감정은 단순히 ‘순수한 사랑’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그녀를 지키기 위해 모든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모습은 돌부처 같은 올곧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소설 후반, 이시가미가 어떻게 야스코에게 마음을 두게 되었는지가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의문이 생겼다. 순수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소름이 돋을 만큼 집착적인 광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가 단순한 스토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담백하게 그려진 묘사는 충격적이었다.
“순수하다고요, 이시가미라는 사내는 말입니다. 그가 구하는 해답은 언제나 단순합니다. 여러 개를 한꺼번에 구하거나 그러지 않아요.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선택하는 수단 또한 단순합니다. 그래서 망설임이 없어요. 사소한 일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건 한편으로 서투른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결론은 전부 가지느냐 아니면 하나도 못 가지느냐, 둘 중 하나죠. 늘 그런 위험이 따릅니다.” - 이시가미의 성격에 대해 야스코에게 털어놓는 유가와의 말(P.298)
후기 : 밀리의 서재 평점은 믿을 만하다
작가에 대한 기대치가 높으면 완독 후 실망할 때가 많다. 하지만 밀리의 서재 평점을 참고하면 실패가 거의 없다. <용의자X의 헌신>도 그랬다. 진정한 독서가들의 평가는 믿을 만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제목 그대로, 용의자X는 헌신하다 결국 헌신짝이 되어버린 결말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오래전 <방황하는 칼날>을 읽고 난 뒤의 개운함과 비슷했다.
결론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을 만한 완성도 있는 작품이었다.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인간 심리의 이면을 담은 깊이 있는 묘사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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