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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주절 한스푼 - 책/인문*에세이

진짜 요리사가 말하는 요리와 인생 ― 최강록 『요리를 한다는 것』 리뷰

by joojul1spoon 2026. 1. 20.

출처 : 밀리의 서재

 

악의적인 편집으로 가득한 요리 경연 프로그램을 보고 나면 이상하게도 피로감이 크게 남는다. 그래서 ‘본방사수’를 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런데 <마스터 셰프 코리아 2>가 방영되던 시기, 유독 ‘최강록’이라는 이름이 자주 눈에 띄었다. 어떤 요리사일까 궁금해 그의 출연 장면을 찾아봤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의 팬이 되었다.

의도치 않게 유행어를 만들어냈던 그의 모습은 가볍거나 우스운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단단한 심지를 가진, 팔뚝만 한 양초 같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묵직하지만 거만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한 태도.

방송을 통해 얼굴을 알린 이후에도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는 다른 요리사들과 달리, 그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심지어 <흑백요리사 시즌1> 탈락 이후에는 인터넷을 하지 않겠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나야, 재도전”을 말하며 <흑백요리사 시즌2>에 참여했고, 결과적으로 우승까지 차지했다. 담담하게 풀어낸 결승 요리를 보며 그의 생각이 더 궁금해졌다.

그리고 요리에 큰 관심이 없는 내가, 처음으로 요리사의 책을 집어 들게 됐다.


책 정보

  • 제목 : 요리를 한다는 것
  • 저자 : 최강록
  • 장르 : 에세이 / 시
  • 출판사 : 클
  • 분량 : 224페이지

요리를 통해 인생을 바라보다

요리사가 쓴 책이라면 당연히 요리 기술이나 레시피가 주를 이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요리를 한다는 것』은 ‘요리사’라는 직업을 통해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은 책이다. 이 점은 프롤로그에서부터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 인생에서 음식과 요리란 무엇인지,

일과 직업이란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프롤로그

 

생선회를 뜨는 칼질 하나, 구움 요리를 위해 준비하는 숯의 상태에서도 그는 삶을 읽어낸다. 그 문장들이 유독 오래 남았다.

칼이 한번 지나간 자리는 다시 붙일 수가 없다.(멋있는 말인데, 내가 한 말이다) 
한번 칼이 지나간 자리는 다시 붙일 수 없다는 건 생선회를 조리하는 데도 필요한 말이지만, 우리가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좋은 말인 것 같다. 진지하되 두려워하지 말 것. 장난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 될 테니까. (P.81)

 

숯은 피크 포인트가 있다는 점,
자신의 삶에서 최고의 순간인 전성기가 있다는 점 때문에 인생에 비유하고 싶었는데, 결국은 재가 되어버리는 허무함도 갖추었구나. (P.84)

 

요리를 이야기하지만, 결국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흑백요리사 시즌2』 요리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해주는 책

‘조림’은 최강록 요리사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 2>를 통해 이미 그는 ‘조림의 최강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흑백요리사 시즌2>에서 그가 말한 ‘조림’에 대한 솔직한 고백은 개인적으로 꽤 충격적이었다.

그에게 조림은 완성된 시그니처가 아니라, 여전히 연구 대상이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할 줄 아는 조림 요리가 많지 않다는 게 창피해서 더 공부를 한 것이다. 언제까지 ‘조림 말고 다른 것도 있어요’ 할 수도 없고, ‘나는 사실 잘 못해요’ 할 수도 없으니 조림 실력을 늘려놓는 게 좋겠다 싶었다. 나에게 조림 얘기를 하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처음부터 조림을 좋아한 건 아니었지만,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고 나서 더 찾아보게 되고, 다른 걸 해도 되는데 조림을 선택하게 되고, 그러다 조림의 끝은 어디일까, 조리고 조리고 또 조리다 보니 이제는 조림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은 깊어진 것이다. 본의 아니게 조림이 운명 지어진 조림인간 최강록. (P.70)

 

겸손하면서도 솔직하다. 『요리를 한다는 것』은 그가 왜 그런 요리를 하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해준다.

아래 문장을 읽으며 <무한 요리 천국>에서 그가 선보였던 음식이 떠올랐다. 재료와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그대로 요리에 투영되었기에 최고점을 받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계란찜은 보물 찾기라는 생각이 든다. 내 앞에 놓은 작은 그릇 속을 작은 숟가락으로 탐험한다. 부드러운 계란만 떠먹어도 보물일 수 있겠지만, 하나씩 무작위로 건져 올려진 건더기들이 진짜 보물 같다. 그런데 건더기 하나하나가 다 제대로 조리가 되어 있다면 보물찾기 하는 시간이 더 값질 것이다. 결국 ‘꽝’이 없는 보물찾기 음식. 그래서 나는 이 음식이 재미있고 좋다. (P.88)

‘빨간 뚜껑 소주’가 보여준 진짜 모습

<흑백요리사 시즌2> 결승 요리에 함께 등장했던 일명 ‘빨간 뚜껑 소주’. 이 장면은 그가 특별한 스타 셰프이기 이전에, 평범한 자영업자이자 우리와 같은 생활인임을 보여준다.

 

이런 가격에 거의 모든 한식을 아우르는 블랙홀 같은 술.
각자 다른 역에서 탔지만 내리는 곳은 모두 같은, 술의 종착점. 
고백하자면, 나는 평생 소주와 살았다. (P.41)

 

그래서 더 공감됐고, 괜히 친분도 없는 저자와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진짜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

책을 덮고 나니 확신이 들었다. 최강록은 정말로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멋있어 보이기 위한 문장도, 잘난 척을 위한 미사여구도 없다. 오히려 솔직하고 담담하다. 그래서 요리를 할 때 그가 어떤 마음과 의도로 움직이는지가 더 잘 느껴진다.

단순히 좋아하는 팬의 마음을 넘어, 이제는 존경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짜임새 있는 삶은 아니었다.
보통의 계단은 일정한데, 내 삶의 계단은 높낮이가 좀 들쭉날쭉했던 것 같다.
어떤 계단은 너무 낮아서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르기 쉬웠을 것이다.
어려운 시기의 계단은 한없이 높아 보였다.
다리를 아무리 올려도 닿지 않아서 기어올라가야 할 때도 있었다.
나에게 요리는 쉽게 지치긴 하지만 지금 여기까지 계단을 오르게 해 준 두 다리다. (P.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