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로 이용하는 전자책 서비스는 밀리의 서재다.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그곳에서 언젠가 읽겠다는 생각으로 담아둔 ‘내 서재’를 오랜만에 열어봤다. 분명 읽고 싶어서 담아놓았을 텐데, 몇 개월이 지나도록 들여다보지도 않은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는다.
이번에 읽은 『마침내, 안녕』 역시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의 내가 담아둔 책 중 하나였다. 그래서 어떤 기대도 없이, 그저 편하게 읽기 시작했다.
📘 책 정보
- 제목 : 마침내, 안녕
- 저자 : 유월
- 장르 : 소설
- 출판사 : 서사원
- 분량 : 216페이지
“열심히 말고, 그냥 살아.”
주인공 백도연은 법원에서 가사조사관으로 일한다. 소설은 그녀가 법원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가사조사관이라는 직업 특성상 수많은 가정의 상처를 마주해야 한다.
하지만 도연 역시 상처를 안고 있다. 이른바 간호사 ‘태움’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친언니의 자살. 그리고 언니가 남긴 짧은 유언.
“열심히 말고, 그냥 살아.”
하지만 대충 사는 것조차 도연에게는 쉽지 않다. 열심히 살지 않기 위해 매일 다짐하고, 스스로를 설득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도 현실적이라 마음이 쓰였다.
“나는 진짜 대충 살 거거든요. 절대로 열심히 살지 않을 거거든요. 이상한 사람들 말 듣지 않을 거거든요. 그런데 열심히 살지 않으려면 매일 이렇게 다짐해야 해요. 자꾸자꾸 나에게 말해줘야 해요. 잊어버리지 않게. 그래서 열심히 살지 않는 게 너무 힘들다.” (p.54)
할 말은 하는 신입, 백도연이 부러웠다
열심히 살지 않으려 노력하는 도연이 직장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인상적이다. 그녀가 나와 닮았다는 공감이 들다가도, 속 시원하게 할 말은 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사회 초년생 때 저랬어야 했는데’ 하는 부러움이 생겼다.
“그렇게 대물림되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도 그런 이유로 참석하라고 하시면 안 할 거예요. 그로 인한 불이익은 감수할 거고요. 법원에서 저를 평가하는 것처럼 저도 이 조직을 보고 정규직 전환할지 말지 결정하고 안 맞으면 나가야죠.” (p.37)
“… 제가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아서 조사관님들을 불편하게 했다면 사무관님이 저한테 직접 말씀하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팀 책임자니까요. 그 정도의 일은 아니어서 못 하시는 거잖아요. 그 정도의 노력도 하고 싶지 않거나 불편함을 감내하기 싫으시다면 참으셔야죠.” (p.40)
우주에서 찍은 지구 사진에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 바다와 지형, 구름만 보일 뿐이다.
어차피 드넓은 우주에서 먼지조차 되지 않는 인간인데, 무엇을 그렇게 증명하려고 조직에 충성하고 젊음을 바쳤나 하는 후회가 스쳤다.
사장도 사원도 모두 먼지 같은 존재라면, 백도연처럼 할 말 하고 살아도 괜찮지 않았을까.
결국은 마음의 성장
젊은 나이도 아닌데 독후감에 ‘성장’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조금 낯간지럽다. 그럼에도 이 단어를 쓰게 되는 이유는, 이 소설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 도연은 힘을 빼고 사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서히 마음이 단단해진다. 극적인 사건 없이도, 시야가 조금씩 넓어지는 변화가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도연은 그제야 알았다. 누군가를 받아들일 줄 아는 선이 덕분에 두 사람이 이렇게 마주 보고 앉을 수 있었다는 걸. 자신이 선이를 생각해 레스토랑에 데려온 게 아니라 선이의 마음이 쌓여 자신이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다는 걸. (p.186)
눈앞의 일에 압도당하면 지도를 살펴볼 여유를 잃게 되지만, 지도에만 집중하다 보면 근경의 아름다움을 놓치게 된다. 삶은 그렇게 마음의 조리개를 열었다 닫았다 하며 초점을 옮겨가는 일이 아닐까. (p.211)
『마침내, 안녕』을 읽고
어쩌면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하나의 통로인지도 모르겠다. 단문과 잘게 나뉜 에피소드를 엮어가는 형식이라 단숨에 읽히지만, 읽고 나서는 마치 내 일기장을 다시 들춰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드라마화가 확정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부디 불필요한 각색 없이 책의 결을 잘 살린 작품이 나오길 바란다.
열심히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이 소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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