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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주절 한스푼 - 책/소설

짧지만 오래 남는 여름의 기억, 성해나 『두고 온 여름』 리뷰

by joojul1spoon 2025. 12. 17.

출처 : 밀리의 서재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와 『우리가 열 번을 나고 죽을 때』를 오디오북으로 먼저 접하며 그의 문장에 깊이 빠져버렸다. 이후 자연스럽게 선택한 책이 바로 성해나 소설 『두고 온 여름』이다. 비교적 짧은 분량이라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실제로 완독까지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덮은 뒤 남은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제목 그대로, 오래 마음에 남는 여름 같은 소설이다.


책 정보

  • 제목 : 두고 온 여름
  • 저자 : 성해나
  • 장르 : 한국소설
  • 출판사 : 창비
  • 총 페이지 수 : 172페이지

재혼가정을 엮어주는 하나의 매듭

소설의 주인공 기하와 재하는 부모의 재혼으로 형제의 연을 맺는다. 두 사람 모두 ‘하’라는 돌림자를 쓰지만, 친형제가 아닌 만큼 관계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여백이 존재한다. 형인 기하는 그 여백을 스스로 만들어 새어머니와 그 아들 재하를 언젠가 떠날 사람들로 여기며 거리감을 둔다.

하지만 약 4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가족으로 살아오며,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네 사람은 이미 서로에게 단단히 매듭지어진 관계가 되었음을 성인이 된 후에야 깨닫게 된다. 새아버지가 재하에게 선물한 DSLR, 함께 보러 갔던 프로야구 경기, 가족이 나들이 갔던 인릉의 기억은 그 시간을 증명하는 장면들이다.

짧지만 강렬했던 그 여름은 기하와 재하에게 ‘한때의 동거’가 아닌, ‘가족’이라는 이름의 따뜻한 매듭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울퉁불퉁한 감정들을 감추고 덮어가며, 스스로를 속여가며 가족이라는 형태를 견고히 하려고 노력했지요. 두 사람 모두 한 번씩은 아픔을 겪었고, 그것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물론 자신을 속일 틈도 없이 툭, 튀어나오는 날것의 감정들도 있었지만요. (P.69)

 


재하에게는 영원할 ‘두고 온 여름’

부모의 이별로 기하와 재하는 결국 헤어지게 되고, 성인이 되어서야 다시 서로를 마주한다. 기하는 예전과 많이 달라진 재하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그 감정마저도 여백을 둔 채 조심스럽게 받아들인다.

반면 재하는 그 여름을 오래도록 간직한다. 새아버지에게서 받은 DSLR을 일본 고베까지 가져가고, 형 기하와 잠시 재회했을 당시 찍은 사진을 바라보며 형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무심한 듯 이어폰을 꽂은 채 미소를 지어주던 기하의 모습은, 재하에게 가족이 태어나던 여름의 기억으로 깊이 남아 있다.

재하는 알지 못하지만, 기하 역시 재하를 동생으로 더 보듬어주고 싶었음을 아래 문장들에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인 ‘두고 온 여름’은, 결국 두 형제에게 ‘두고 온 여름’이 아니라 ‘간직할 여름’로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재하를 보며 저 애가 내 친동생이라면 어땠을까, 잠시 가정해보기도 했다. 투박하고 거침없이 속엣말을 쏟아내며 보다 친밀해질 수 있었다면. 서로에게 시큰둥하다가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끈끈한 우애 같은 것을 우리가 처음부터 나눌 수 있었다면. (P.26)
입안에서 사탕 조각을 굴리며 내가 왜 이곳에 왔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재하에게 해주어야 했을 말들을 뒤늦게나마 중얼대보았다. 잘 지냈니, 보고 싶었어, 잘 지냈으면 좋겠다, 미안해 같은 평범하고도 어려운 말들. 이제 와 전송하기에는 늦어버린, 무용한 말들을. (P.131)

 


긴 여운이 남는 짧은 한국소설

『두고 온 여름』은 172페이지로 분량이 짧고 문장도 길지 않아 단숨에 읽을 수 있다. 기하와 재하, 두 인물의 시점이 번갈아 서술되는 방식 덕분에 형제의 감정선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크다. 그만큼 인물의 감정에 깊이 몰입하게 되고, 책을 덮은 뒤에도 여운이 길게 남는다.

작가의 말처럼, 기하와 재하가 어느 곳에 있든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바라게 되는 소설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쓸 때마다 내가 두고 온 인물들이 그곳에서 행복하기를, 평온하기를 빈다.
– 작가의 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