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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주절 한스푼 - 책/인문*에세이

김상욱 교수 추천 도서 『가짜 노동』 리뷰 – 우리는 왜 바쁜 척을 하는가

by joojul1spoon 2026. 2. 24.

출처 : 밀리의 서재

 

 

삶이 고달플 때, 세상을 과학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내가 나도 모르게 붙잡고 있던 욕심이 스르르 내려가는 경험. 그 출발점에는 늘 김상욱 교수가 있었다.

그래서 김상욱 교수가 추천하는 책이나 영상은 가능한 한 챙겨 보려 한다.

이번에 읽은 『가짜 노동』 역시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의 언급을 보고 선택하게 됐다.


📚 책 정보

  • 제목 : 가짜 노동
  • 지은이 : 데니스 뇌르마르크, 아네르스 포그 옌센
  • 출판사 : 자음과모음
  • 장르 : 인문
  • 분량 : 411페이지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이 상황의 근본 원인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석연치 않은 느낌의 이유를 알아야 했다.
또한 우리가,
즉 사회가 그토록 끈질기고 분주하게 구태의 삽질을 똑같이 되풀이하다가
스트레스로 나가떨어지는 부조리의 원인을 알아내야 했다.
- 프롤로그 중

우리는 왜 ‘가짜 노동’을 하는가

‘가짜 노동’이라는 단어는 꽤 신선했다.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그럴듯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살아간다. 그런데 저자들은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실질적 가치가 없는 업무에 시간을 쓰고 있다는 현실을 마주한다.

흥미로운 점은, 기술 발전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는 기술 혁명 이후 오히려 노동량이 증가했다고 설명한다. 반면 『가짜 노동』은 기술 발전으로 노동 시간이 단축되면서 생긴 잉여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한다.

즉, 노동 시간 대비 ‘진짜 할 일’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남는 시간을 ‘가짜 노동’으로 채운다는 것이 저자들의 핵심 주장이다.

 

누군가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절약할 방법을 알아낼 때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시간을 사용할 새로운 방식을 알아낸다는 것이다. (P.48)

가짜 노동이 만들어 낸 ‘바쁜 척’ 문화

진짜 일이 충분하지 않다면 사람들은 ‘바쁜 척’을 하게 된다.

할 일을 억지로 만들어내고, 불필요한 회의로 시간을 채우고, 아무도 읽지 않을 보고서를 작성한다. 조직은 결과보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굳어진다.

우리 사회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정시에 퇴근하면 ‘칼퇴근’이라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마치 할 일이 없어서 일찍 집에 가는 사람처럼 은근한 낙인이 찍힌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새벽 시간에 예약 메일을 보내고, 참조 수신인에 여러 명을 포함시켜 ‘일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노동이 일종의 특권처럼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가 낳은, 웃지 못할 장면이다.

 

지옥 같은 직장 생활로 가는 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돼 있고, 가짜 노동은 포장 재료 가운데 하나다. (P.159)

아쉬웠던 해결책

그렇다면 ‘가짜 노동’이 만연한 분위기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은 다소 원론적이다.

  •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하기
  • 진짜 의미 있는 일 찾기
  • 짧은 회의
  • 가짜 노동 해시태그 달기 운동
  • 관계 지향적 리더십
  • 직원을 신뢰하는 관리자
  • 시간보다 결과 중심 평가

물론 위 내용이 전부는 아니다. 그중에서 그나마 실현 가능해 보이는 것들만 정리했다.

하지만 과연 저 방법들이 실제 조직에서 가능할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가짜 노동’도 조직을 굴러가게 하는 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핵심 업무만 한다면, 조직이라는 퍼즐을 이어 붙일 접착제가 사라질 수도 있다.

책에서 불필요하다고 지적한 ‘지원 업무’ 역시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핵심 부서의 부담이 가중될 뿐이다.

또한 저자들은 필요한 노동을 필요한 시점에 활용하는 단기 고용이 고용 시장을 유연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조금 다르다.

2년 계약직 후 정규직 전환이라는 제도는, 실제로는 2년만 사용하고 교체되는 구조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계약이 끝나면 또다시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가짜 노동’이라는 날카로운 진단에 비해, 해결책은 다소 이상적이라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마무리 – 나는 지금 진짜 일을 하고 있는가

『가짜 노동』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직장 문화와 업무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신선한 책이었다.

다만 해결책이 도덕 교과서에 나올 법한 수준에 머무른 점은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은 뒤 한 가지 질문이 남았다.

나는 지금 ‘진짜 노동’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의미 없는 업무로 스스로를 소모하고 있는가?

AI의 발전으로 이미 많은 ‘가짜 노동’이 자동화되고 있다.

변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시대에, 내가 진짜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게 된다.

어쩌면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조직을 비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노동을 의심하게 만드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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