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배경화면이기도 한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사진을 좋아한다.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생각에 갇힐 때 저 사진을 보면 그냥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사진은 태양계 탐사를 떠난 보이저 1호가 해왕성을 지나치는 시점에 카메라를 뒤로 돌려 찍은 지구의 모습이다. 냉정할 것만 같은 과학자에게서 이런 감성적인 표현이 나왔다니. 칼 세이건의 사고방식이 궁금했다.
원래 그의 저서를 읽고 싶었지만 밀리의 서재에 서비스 중인 책은 인터뷰를 엮은 <칼 세이건의 말 - 우주 그리고 그 너머에 관한 인터뷰> 뿐이었다. 아쉬웠지만 조금이나마 칼 세이건과 친분을 쌓을 기회라 생각하고 읽었다.
과학적 사고방식과 민주주의
시국이 어수선해서인지 ‘민주주의‘라는 단어만 보면 주의 깊게 읽게 된다. 칼 세이건은 과학과 민주주의가 함께 공명하는 가치와 접근법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과학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고 의견을 피력해야 발전하는 분야다. 즉, 회의적인 질문을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과학과 민주주의는 닮은 점이 많다.
과학은 하나의 사고방식이다.
회의적인 질문을 통해 시민이 정부를 운영하게 해야 한다.
정부가 시민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는 불신의 대상인가
물리적 실체에 바탕을 두지 않은 상상은 과학이 아니다. 그런 논리로 본다면 과학자에게 종교는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형태의 종교를 ‘믿는다’. 고등학교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과학 시험문제 중 정답이 아님을 알면서도 종교적 신념 때문에 ’ 창조론’을 답안으로 제출하고 틀렸던 기억이 있다. 이 친구에게는 점수보다 종교적 신념이 더 중요했다. 실체로 증명이 된 ‘진화론’이 사실이고 정답인데 틀린 걸 알면서 오답을 고르는 행위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라 신비주의, 종교입니다. 창조론을 신화 수업에서, 사회 트렌드를 다루는 수업에서, 심지어 종교 수업에서 가르치는 건 저도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주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학 수업에서는 아닙니다. 그건 과학이 아니니까요. (P.268)
그렇다고 과학이 종교를 부인하진 않는다. 신앙과 종교는 증거가 없는데도 믿는 것이다. 그래서 설득력 있는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 믿음을 유보하자는 것이지 믿지 않는 것 또는 부인과 다르다. 문제는 종교에는 과학적 증거가 없는데 교리를 바탕으로 정치적, 경제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땐 열린 과학적 사고가 무조건 믿으라는 종교보다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과학은 가장 존경받는 인물의 견해를 반증한 사람에게 제일 큰 보상을 안깁니다. 종교는 정확히 그 반대죠. 종교는 가장 존경받는 인물에 대해서 비판이 제기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P. 340)
창조적 회의주이자 칼 세이건도 증명되진 않지만 믿는 것이 하나 있다고 했다. 우주의 시작이 왜 빅뱅이었는지 밝혀지지 않은 것처럼 인간이 어떻게 호기심과 지성을 갖게 되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 무엇이 되었든 전통적인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의 호기심과 지성은 그 신이 선사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럴 경우에 우리가 우주와 자기 자신을 탐구하고자 하는 열정을 억누르는 것은 신이 주신 선물을 푸대접하는 꼴일 것입니다. (P.205)
우주 탐험을 통해 지구를 구한다. (Feat. 일론 머스크)
우리는 우주를 대변하는 존재다. 즉, 우주 만물은 인간의 구성 성분과 다르지 않다.(이 부분은 김상욱 저서 <떨림과 울림>과 뜻이 같은 부분이다.)
우리 몸을 이루는 물질은
원래 별의 중심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별의 물질로 이뤄진 존재들입니다.(P.173)
지구는 평범한 은하의 외곽에 놓여있고, 그 은하에는 그런 별이 4000억 개나 더 있고, 그런 은하가 우주에는 1000억 개쯤 더 있다. 하나의 점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그럴 확률은 아주 낮다. 그렇기에 이 작은 점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우주 탐험이 필요하다. 지구와 비슷한 성분으로 이루어진 우주 어딘가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도 있고 이를 통해 지구를 지킬 방법을 얻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지구를 구해야 할까? 지구를 보호하는 대기는 아주 얇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지구본 발린 유약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삶의 터전이 될 다른 행성도 찾아보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예로 화성에 대한 언급을 했다. 오존층이 없는 화성 연구를 통해 지구의 오존 보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될 거라 했다. 이 부분에서 ‘화성 갈 거니까’ 일론 머스크가 떠올랐다. 책에 담긴 인터뷰 내용 대부분이 1990년대에 이뤄졌다. 화성 테라포밍화가 몇십 년 안에 일어날 수 있다고 칼 세이건이 답하는데 그 시기가 바로 요즈음 2020년대다. 미래를 정확히 보고 있었다.
화성에 대기 만들기
압축 메탄을 가지고 가는 겁니다. 그래서 그걸 대기 중 이산화탄소와 결합시키는 겁니다. 산소 분자를 생성해서 메탄과 결합시키면─산소 분자는 이산화탄소에서 생성해 낼 수 있습니다─연료와 산화제를 얻을 수 있습니다. (P. 240)
창백한 푸른 점을 떠나면 길고 꿈 없는 잠을 잔다.
칼 세이건은 골수형성이상이라는 병으로 투병을 하다 생을 마감한다. 여동생에게 골수 이식도 받고 치료에 차도가 있는 듯했으나 그의 말에 따르면 ‘이상 세포‘가 생겨 ‘창백한 푸른 점’을 떠나게 된다. 떠난다는 표현도 어쩌면 그의 입장에선 적절하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과학자에게 죽음은 원자 상태로 돌아가는 현상일 테니까.
사후세계도 증거가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문학적인 표현으로 사후세계를 묘사했다.
제가 죽으면 가족이 어떨지를 생각해 봤죠. 제가 어떨지는 별로 많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뒤의 일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하고 말고 할 게 없다고 보거든요.
... 네. 길고 꿈 없는 잠이겠죠. (P.379)
번역이 아쉬운 부분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칼 세이건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특히나 어려운 과학 지식전달이 아니라 과학이 왜 중요한지 설득하는 그의 인터뷰 답변들이 소설보다 더 문학적이었다.
우리가 알고 사랑하고 한 번이라도 이름을 들어봤던 모든 사람이
바로 저 티끌 같은 먼지와 햇살 위에서 삶을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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